필자는 이번 테마파크 기획 프로젝트에 교환학생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참여하지 않았다. 비록 몸은 바다 건너 있었지만, 비대면 미팅에 종종 참가하며 팀원들이 1년 가까운 기간동안 새로운 테마파크 기획에 매진해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마침내 새로운 테마파크 기획이 마무리되었고, 필자는 외부자-어쩌면 첫번째 관람자-의 시선에서 새 테마파크를 리뷰해보고자 한다.
테마파크는 공간콘텐츠이다. 테마파크라는 공간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에 어떤 콘텐츠를 담느냐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킬러콘텐츠형 테마파크’는 테마파크의 집객력을 높이기 위해 인지도 높은 IP를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지브리 파크(일본)’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애니메이션을, ‘유니버셜스튜디오(미국)’는 ‘쥬라기공원’, ‘죠스’ 등 영화를 활용한 킬러콘텐츠형 테마파크이다.
이번에 기획된 테마파크 역시 킬러콘텐츠형 테마파크이다. ‘쿠키런: 킹덤월드’라는 이름이 말하듯 ‘쿠키런’이라는 인지도 높은 게임 콘텐츠를 테마파크에 적용했다. 이런 시도는 최근 테마파크 업계에서 게임콘텐츠가 각광받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당장 유니버셜스튜디오재팬의 ‘닌텐도 월드’만 봐도 연일 구역 입장권이 매진되며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쿠키런: 킹덤월드’는 시장의 흐름을 반영하되,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탄탄한 스토리를 갖춘 IP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우선 파크 마스터플랜이 눈에 들어온다. ‘쿠키런: 킹덤월드’는 파크 외부 시설까지 계획된 점이 인상적이다. 테마파크 기획이라고 하면 파크 내부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파크 내부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파크 외부의 인프라이다. 테마파크는 결국 수익을 내는 사업이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도입하더라도, 낮은 접근성으로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면 허울뿐인 계획안 일 수밖에 없다.
‘쿠키런: 킹덤월드’를 살펴보면 메인 게이트 양쪽으로 대규모의 주차장이 계획되어 있다. 테마파크라는 대규모 시설을 수용하기 위한 부지는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도심 외곽지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주차장은 필수적이다. 마스터플랜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주차장-대중교통 시설-파크 입구를 이어주는 이동수단도 무리없이 계획할 수 있어 보인다. 파크 외부만 살펴보았을 때, ‘쿠키런: 킹덤월드’는 관람자 유인을 위한 인프라까지 계획이 되어 있는 비교적 현실성 있는 파크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관람자가 쿠키가 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쿠키런: 킹덤월드’의 관람자는 하나의 쿠키가 되어 용감한 쿠키를 도와 어둠마녀 쿠키 일행의 악행을 저지하게 된다. 이 재미난 설정을 관람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 운영에서는 “킹덤월드를 찾아주신 쿠키시민 여러분” 등의 안내방송을 통해 관람자들이 쿠키라는 사실을 전하거나, 주요 출입구를 쿠키형태로 디자인하는 등의 연출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파크를 탐방해볼 것이다. 파크에 진입하자 아기자기한 선착장이 드러난다. 쿠키런: 킹덤 세계관 도입을 알리는 준비운동 성격의 공간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치는 글로벌테마파크에서 주로 사용되는데, 대표적으로 유니버셜스튜디오의 시티워크가 이에 해당한다. 관람자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의 서막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이 작은 마을에서 중앙구역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터널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동선처리는 일방적으로 관람자의 체험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테마파크에서 주로 쓰이는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터널에서 파크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를 설명하기 때문에-물론 얼마나 많은 관람자가 이에 집중해 줄지는 의문이지만- 납득이 가능한 동선이다. 기획자들이 이토록 배경스토리 전달에 적극적인 이유는 테마존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된다.
이렇게 전이공간을 통해 중앙 광장에 진입하게 된다. 광장을 중심으로 테마존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일반적인 방사형 구성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스토리에 진심인 이 기획자들은 단순히 테마존을 배치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 테마존은 하나의 큰 스토리로 이어져 있다. 각 테마존이 개별적인 스토리텔링을 함은 물론, 이들은 하나의 ‘쿠키런: 킹덤’ 세계관으로 이어져 있다. 앞서 터널을 지나며 언급한 ‘이들이 적극적으로-어쩌면 강압적으로- 스토리를 관람자에게 주입시키고자 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더 이상의 스토리에 대한 언급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테마존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네개의 고대 왕국과 하나의 어두운 공간으로 구성된다. 단순히 말하면 ‘하나의 어두운 공간’이 다른 테마존들을 느슨하게 이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각 테마존에서 그 연결고리를 찾는 것도 하나의 ‘보물찾기’ 놀이적 요소로서 작용할 것 같다.
이 테마존들은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한마디로 고약한 기획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방사형 구조는 관람자에게 동선의 자유도를 최대한 부여함으로써 파크 내 서사 진행의 주도권을 관람자에게 이양한다. 다시말해 기획자가 관람자의 체험-동선 진행 순서와 테마존의 강조 등-일방적으로 유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획자들이 입장동선을 ‘터널’로 처리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들은 관람자에게 지독하게 세계관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중앙광장에서 관람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유는 '또다른 연출'으로 보아야 한다. 사실 관람자가 4개의 왕국을 어떤 순서로 탐험하더라도 파크 전체 세계관과 충돌하는 일은 없다. 4개의 왕국은 전체 세계관에서 ‘결말’이 아닌 ‘과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람자들이 주도적으로 '과정'을 겪으며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든 뒤, 기획자들이 유도한 ‘결말’ 공간에 진입하게 되는 고약한 설계인 것이다. 이 ‘결말’ 공간은 앞서 4개의 왕국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이어주는 비밀공간이다. 지독한 기획자들은 이 공간에 진입하는 동선만큼은 다시 통제하고 있다. 파크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온 관람자들은 기획자가 준비한 '결말 공간'에서 완전한 스토리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는 치밀한 계획과 수정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 이들은 방사형 동선이 갖고 있는 특성을 분석하고, 고도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했다. ‘쿠키런: 킹덤월드’ 는 이렇게 지독하게 기획되었다.
어트랙션은 파격적인 요소들을 관람자들에게 익숙한 방법으로 전달한다. 프리쇼-메인쇼-포스트쇼의 익숙한 3막 구성을 취하지만 개별 어트랙션이 담고 있는 스토리, 기술적 요소들은 파격적이다. 사견이지만, 파크기획 전체를 놓고 봐도 어트랙션 설계가 밀도있게 진행되었는데, 아무래도 두 기계공학도의 영향이 컸지 않았나 싶다. 모든 어트랙션에서 기획자들의 이러한 치밀한 고민은 엿보이지만, 리뷰에서는 가장 ThemeIN스러운-한마디로 지독한-어트랙션인 '최후의 전투: 혼돈의 마왕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외관만 봤을 때는 하나의 거대한 성처럼 보인다. 전반적인 테마는 타락한 어둠마녀와 그 추종자(쿠키)들의 본거지에 관람자들이 잠입했다는 설정이다. 뭐가 특별하냐하겠지만 저 성에는 두개의 어트랙션이 있고, 그 두 어트랙션은 상호작용한다. 다크라이드와 드롭라이드가 기획되었는데, 같은 스토리를 공유하다 중간에 만나게 되는 갈림길이 인상적이다. 갈림길에서 관람자는 다크라이드를 탑승할지, 드롭라이드를 탑승할지를 선택하게 된다. 두 어트랙션 모두 어둠마녀의 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달하고 있다보니 분위기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드롭라이드는 어둠마녀 쿠키가 반죽에 떨어지는 장면을 구현하고 있고, 다크라이드는 어둠마녀와 추종자들이 어떤 일들을 벌여왔는지를 전달하며 시작된다. 공교롭게도-치밀하게 의도되었겠지만-두 이야기의 접점이 어둠마녀 쿠키가 반죽에 빠지는 시퀀스이고, 이 장면에서 두 어트랙션은 서로 개방된다.다크라이드를 탑승중인 관람자가 반죽으로 낙하(드롭)하는 관람자들을 하나의 스토리 진행 장치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어트랙션이 상호작용하는 것은 매우 드문데, 일차원적 사례로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아트란티스-자이로스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트란티스 비클과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것만 같은 자이로스윙의 움직임이 중첩되는 것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데, 여기에 스토리라는 연결고리가 추가되어 개연성까지 높인 연출은 파격적이다. 고약한 기획자들은 그들만의 하나뿐인 어트랙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맛보기' 수준이지만 '쿠키런: 킹덤월드'를 비교적 낯선 사람의 시선에서 리뷰해 봤다. 이번 파크 기획 역시 theme IN 답게 스토리에 진심이었고, 디테일까지도 신경 쓴 부분이 감동적이었다. 이같은 팀원들의 '테마파크'가 보다 많은 사람들의 방문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리뷰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보다 본격적인 탐험은 '쿠키런: 킹덤월드' 테마파크 기획 프로젝트 (1)~(6)의 게시물에서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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